경제학이 하나의 체계적인 독립과학으로서 성립된 것은 자본주의 경제가 성립된 18세기 중엽이었다. 그 창시자를 프랑스의 케네(F.quesnay:1694~1774)라고 보는 사람도 있고 영국의 아담 스미스(A. Smith : 1723~1790)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으나 대개 스미스가 경제학의 창시자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스미스 이전에도 인간이 경제현상에 무관심 했던 것은 아니었으며, 이미 그리스·로마의 철학자나 중세의 신학자의 주장 속에서 수많은 훌륭한 경제사상을 발견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고대 및 중세의 경제사상은 언제나 윤리학, 정치학, 신학의 일부로서 논의되었고 경제문제만을 독립적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고대 그리스와 기독교 전통에서는 상업을 통한 이윤추구는 결코 바람직 하지 못한 것으로 보았다.
영국의 정치경제학자 '찰스 대버넌트(Charles Davenant : 1656~1714)'는 "상업을 통한 이윤추구는 바람직하지 않다" 라고 말을 했고, 토마
생 신부는 "소유에 관한 거대한 탐욕을 두고 무죄라고 할 수 있을까, 혹은 가벼운 범죄로 치부할 수 있을까?"라고 말하였다.
신학이나 철학, 의학 등 아주 옛날 과거부터 전문 학자에 의해 연구되고 대학에서도 계속 강의가 이루어져왔던 다른 학문과 달리 경제학은 역사가 짧은 새로운 학문이었다. 경제학의 발상지인 영국에서조차 경제학자라는 전문가가 나오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게 된 것은 19세기에 이르러서 였다. 19세기에도 경제학은 다른 학문에 보조적 역할이었기 때문에 독립적인 학문 분야로 인정된 것은 고작 1세기 정도밖에 안되었다.
경제학이 하나의 독립된 사회과학으로 파생된 것은 자본주의 생산ㄴ양식이 자리잡기 시작한 때부터이다.
상품의 유통범위확대(봉건사회 붕괴) → 시장범위 확대 →민족국가의 형태 + 국부의 증대 노력 발생
이 때의 국부는 어느 나라가 재산을 더 많이 소유했냐로 나뉘기 때문에 이를 얻기 위한 무역의 역할이 컷고, 그래서 이 당시 정부 정책도 공업보다는 무역에 무게가 실렸다.
그래서 이 때의 경제 사상을 중상주의라고 부른다.
중상주의 정책의 기본적인 특징은 국가가 신흥자본가의 무역과 산업을 직접 발전시키고 정착하게 하기 위하여 국가권력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보호주의 정책을 통하여 외국과의 경쟁으로 부터 그 산업을 충실히 보호하는 것이었다.
이와 반대로, 프랑스에서는 중상주의를 부정하는 중농주의가 탄생하였다.
중농주의란 가연법 사상에 기초하여, 상업이나 공업보다는 농업에 치중하는 것이 국부를 더 발전 시킨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프랑스가 이러한 입장을 가지게된 이유에는 프랑스의 경제 상황이 배경에 있었다.프랑스 루이 14세 시기 유명한 재상 콜베르(Colbert, 1661~1682)때 부터 지속적으로 중상주의 정책의 입장에 서있었다. 콜베르는 무역, 해운업 및 산업에 국가를 개입시키는 초기 자본주의 시대의 전형적인 정책을 추구하면서 해외무역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해운업을 일으키고 대형선박을 건조했으며, 인도와의 거래를 장려하고, 아메리카에 식민지를 세웠으며, 외국산 공업제품의 수입이 금지되거나 방해된 반면, 특별상여금을 지급함으로써 프랑스 공업제품의 수출을 촉진하였다. 이러한 정책을 실행하기 위해서 공업이 싼 노동력과 원료를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내수에서는 저곡가정책을 시행하였다. 저곡가 정책의 목표는 싼 노동력과 원료의 확보와, 도시주민을 보호하는데 있었다. 저곡가가 유지되기 위하여 해외수출은 금지하면서 수입은 허가하는 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오히려 농업산업에 큰 피해를 주었다. 게다가 큰 해외시장과 식민지를 꿈꾸던 프랑스는 실패해 버렸다. 영국이 프랑스 식민지였던 아메리카의 지배권을 빼앗고, 인도에서 프랑스의 자리를 빼앗으므로써 18세기 세계시장지배권 전쟁에서 프랑스가 영국에게 패하였다. 결국, 프랑스의 중농주의 정책은 실패하고 농민,농촌은 더욱더 피폐해져갔다.
위의 두 경제사상과 페티(W. Petty : 1623~1687)의 노동가치설에 입각, 아담 스미스는 고전경제학을 창시 하였다.
18세기 중엽 영국의 산업자본주의 출현과 함께 아담스미스에 의해 창시된 고전경제학은 중농학파의 자연법사상에 기초해 종래의 권위질서를 자유경쟁의 질서로 바꿔야 함을 주장했고, 국부도 재산이 아닌 노동에 의하여 생산되는 생산물의 양적 증대에서 나온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경제문제는 "국민의 물질생활을 어떻게 풍부하게 하느냐?"가 연구주제가 되었고, 이것은 결국 경제학을 독립과학으로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18세기 이후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과 이를 바탕으로 하여 발전한 고전경제학 이론은 당시 후진국이었던 독일에게 위협으로 다가왔다.
따라서 그들은 경제발전단계에 따라 경제이론도 다르다는 역사학파를 만들었다.
'경제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계효용학파(슘페터) (0) | 2023.07.19 |
---|---|
한계효용학파(마샬, 클라크)의 이론 (0) | 2023.07.19 |
4. 시장의 종류 (0) | 2023.07.18 |
3. 수입(Revenue)과 이윤극대화 생산량 (0) | 2023.07.18 |
2. 단기)생산비용 (0) | 2023.07.18 |